헨리 모즐리와 원자 번호의 발견

헨리 모즐리는 1913년에 주기율표에서 각 원소의 자리가 원자량이 아니라 원자핵의 양전하인 원자 번호로 정해진다는 것을 보인 영국의 물리학자입니다. 그의 X선 측정은 표에서 순서가 뒤바뀐 쌍을 설명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가 정확히 무엇인지 짚어 냈습니다.

원자량의 문제점

멘델레예프 이후 40년 넘게 주기율표는 몇 가지 어색한 예외를 빼고는 원자량 순으로 정렬되었습니다. 아르곤은 칼륨보다, 코발트는 니켈보다, 텔루륨은 아이오딘보다 무겁지만, 각 쌍에서 더 무거운 원소가 분명히 앞에 와야 했습니다. 또한 희토류 원소의 원자량이 서로 너무 비슷해서, 화학자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희토류 원소가 몇 개나 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1911년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원자에 양전하를 띤 아주 작은 원자핵이 있음을 보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의 과학자 안토니우스 판 덴 브루크는 표에서 원소의 위치가 그 원자핵의 전하와 같을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모즐리는 이 생각을 검증하기로 했습니다.

모즐리의 X선 실험

1887년에 태어난 헨리 그윈 제프리스 모즐리는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뒤 맨체스터 대학교의 러더퍼드 연구실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서로 다른 원소의 시료를 X선관의 표적으로 쓰고, 윌리엄 헨리 브래그와 그의 아들 로런스가 최근에 개발한 기법으로 결정에 X선을 반사시켜 각 원소가 내놓는 X선의 파장을 측정했습니다. 1913년 말 그는 칼슘에서 아연까지의 원소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고, 1914년에는 알루미늄에서 금까지 대부분의 원소로 연구를 넓혔습니다.

결과는 놀랄 만큼 간단했습니다. 각 원소의 가장 강한 X선 선의 진동수의 제곱근이 한 원소에서 다음 원소로 갈 때마다 거의 같은 크기만큼 증가했습니다. 이 관계는 지금 모즐리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자 번호가 이어받다

모즐리는 각 원소의 원자핵에는 바로 앞 원소보다 양전하가 한 단위 더 많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원소의 자리를 실제로 정하는 것은 이 정수, 즉 원자 번호이며, 오늘날 우리는 이것이 원자핵 속 양성자의 수와 같음을 압니다. 원자 번호 순으로 정렬하자 예외 없이 아르곤이 칼륨 앞에, 코발트가 니켈 앞에, 텔루륨이 아이오딘 앞에 놓였고, 주기율은 '성질은 원자량이 아니라 원자 번호에 따라 되풀이된다'로 다시 정리되었습니다.

드러난 빈칸

원자 번호는 정수이므로 모즐리의 방법으로 원소의 수를 셀 수 있었습니다. 이 방법은 원자 번호 43, 61, 72, 75번 원소가 아직 빠져 있음을 보여 주었고, 란타넘(57)과 루테튬(71) 사이에 란타넘족 원소가 몇 개 있는지 결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빈칸들은 이후 30년에 걸쳐 채워졌습니다. 하프늄(72)은 1923년, 레늄(75)은 1925년, 테크네튬(43)은 1937년, 프로메튬(61)은 1945년입니다. 하프늄과 레늄은 모두 모즐리가 개척한 방법인 X선 분광법으로 추적해 찾아냈습니다.

갈리폴리에서의 죽음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모즐리는 영국군에 자원하여 왕립 공병대의 통신 장교가 되었습니다. 그는 1915년 8월 10일 지금의 튀르키예에 있는 갈리폴리에서 27세의 나이로 전사했습니다. 러더퍼드는 학술지 《네이처》에 그의 추도문을 썼고, 많은 과학자가 그의 죽음을 전쟁이 과학에 입힌 가장 큰 손실 중 하나로 여겼습니다. 불과 몇 년의 연구로 모즐리는 주기율표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